Women of Chosun Dynasty 3
책을 읽고 - 조선의 여성들, 부자유한 시대에 너무나 비범했던 - 인물 정리 II (박무영, 김영미, 조혜란 돌베개, 2004)
- 인물 정리 II
임윤지당 (1721~1793): 조선 후기 철학자. 성리학자. 동생 임정주와 시동생 신광우가 1796년(정조 20년) [윤지당유고] 2권을 간행함.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학문에 대한 열의만은 강했던 집안 분위기에서 자란 임윤지당은 자신의 노력과 형제들의 도움을 여성 규범 교육을 넘어서 효경, 소학등의 공부를 해 나갈 수 있었다. 결혼 후에도 성리학 공부를 계속하고 자신만의 철학을 확립해간다. 남편, 아들, 형제등을 잃는 박명함 속에서도 학문에 대한 성찰에는 계속해나갔다.
가족들이 엮은 그녀의 유고 [윤지당유고] 2편에서는 인물론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데 그 중에는 “송씨 대 부인” ( 송능상의 부인 청주 한씨에 대한 인물론)등 두 편의 여성 인물론도 포함되어 있다. 임윤지당은 무엇보다도 평생에 걸쳐 학문을 해나감으로써 스스로 여성도 성리학을 할 수 있으며 여성도 남성과 같이 성리학의 도를 실천하는 성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참된 지식인이다.
김만덕 (1739~1812): 조선 후기 사업가. 여성이 섬 밖으로 나가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었던 조선시대 제주도에서 태어나 금강산을 여행한 당찬 사업가.
김만덕은 양민으로 태어났으나 가세가 기울어져 천민인 기생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여러 상고를 거친 끝에 그녀는 당당하게 자신의 신분을 환원해낸다. 그녀의 의지와 당당함, 민첩함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제주도와 뭍의 중간 상인으로 사업을 시작해 부를 쌓아가는 데서도 드러난다. 여기에 자신의 재산을 기근으로 아사직전에 처한 제주도민을 위해 당당하게 쓸 줄도 알았던 의로움도 그녀를 비범한 조선의 사업가로 대표할 수 있게 한다. 이 선행을 기리기 위해 정조는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고 그녀는 평생의 소원이었던 금강산과 한양을 유람할 수 있게 된다.
김만덕은 여성의 사회적 진출뿐만 아니라 여성의 뭍의 진출도 원천적으로 금지되었던 제주도에서 태어나 당당하게 자신만의 사업뿐 아니라 자신만의 삶도 경영해낸 진정 용기있는 조선의 여성이었다.
김삼의당 (1769~1823): 조선 후기 시인. 시벗이 되어준 남편 하립과의 연정, 자연의 변화, 농촌의 생활등을 언어를 이용해 소박하게 그려내고 있다. 여성으로 태어나 감당해야하는 유교적 제약인한 상실감보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편안함속에서 생활에 밀착된 감정들을 표현한 시들을 주로 지었다. [삼의당 부인의 유고]등을 통해 100여편 이상이 시가 전해진다.
당신께 술을 권하오
당신께 권하니 당신은 실컷 취하오
부질없이 상머리의 돈 지키긴 싫소
오래오래 눈앞의 술잔 대하고 싶소
풍양 조씨, 풍양조씨 (1772~1815): 자신만의 방식으로 남편에 대한 사랑을 실천한 조선의 여성. 남편 김기화가 병들어 결혼 6년 후 죽기까지의 일을 기록한 일지 병상일지 [자기록]에서 남편이 죽으면 따라 죽는 것이 여자에게 가장 큰 명예가 되었던 조선 후기에 그렇게 할 수 없었던 자신의 고뇌와 마음의 변화를 기술해간다.
남편을 따라 죽는 것이 “열녀”라는 “명예”를 위해 감당하기에는 절대 쉬운 일이 아님을 자신의 고뇌와 갈들을 통해서 잘 전달해주니다. 남편의 상을 겪으면서 사회적 기대치에 부합할 수 없엇던 마음의 고뇌를 써내려감으로써 가부장제에 의해 쉽게 반복되어 오던 열행이라는 것이 얼나마 부조리한 것이었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 풍양 조씨는 뛰어난 시인도 문인도 아니었지만 비합리적인 유교적 삶의 방식에 조선의 여성들이 늘 침묵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결코 평범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강정일당 (1772~1832): 조선 후기 시인, 문인. [정일당유고]에 다수의 시와 산문이 실려있으며 몇 점의 서체도 남아있다. 어려서부터 경전을 읽는 등 학문을 익혀갔으나 결혼 후에는 가난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가난 속에서도 남편과 짧은 글들을 주고 받으며 남편의 학문적 스승,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었다.
남편 뒷바라지를 하면서도 주경야독으로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던 그녀의 학문이 더욱 의미가 있는 이유는 경전을 탐독만 한 것이 아니라 일상 생활속에서 실천하기 위해 늘 노력을 했었다는 점이다. 또한 여성이 학문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 조선시대의 편협된 시각을 따르지 않고 임윤지당의 글을 인용하기도 했다. 가난속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그녀의 삶은 여성도 학문을 할 권리가 있음을 몸으로 실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기릴 수 있다.
김금원 (1817~): 19세기 중반 시인. [호동서락기]의 저자. 혼사를 논하는 열 네살의 나이에 세상을 보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남장을 하고 홀로 여행길에 나서고 그 여행 이야기를 [호동서락기]속에 남김. 여행를 마친 후 여성만의 시회, 삼호정 활동을 하기 전까지의 그녀의 행로는 기녀생활을 했다고도 하는 연구가 있지만 정확하게는 알려져있지 않다.
김덕희의 소실로 서울에서 지낼 때 시적 교감을 나눌 수 있었던 운초, 경산, 죽서, 경춘등과 함께 여성만의 시회를 벌이게 된다. 그녀의 시대, 조선에서는 양반의 소실이 되어서야 시회를 즐길 경제적 여유도 얻을 수 있었지만, 그녀는 그런 힘을 빌어서라도 자신의 재능을 펼치려고 하였고 잊혀지지 않기 위해 그런 삶을 [호동서락기]라는 기록으로 남긴 용기있는 여성이었다.
바우덕이 (19세기): 남성위주의 남사당패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남사당패를 이끄는 꼭두쇠까지 됨. 자신의 재능으로써 당당하게 인정을 받았으며 패를 이끄는 꼭두쇠의 자리도 해 낸 용기있는 예인.
윤희순 (1860~1935): 19세기말~20세기초의 독립운동가. 남성들만의 의병운동에 음식과 옷을 조달, 사기를 복돋우기위한 노래 보급, 다른 여성들의 의병활동을 이끌어낸 의병, 독립 운동가. 을미년(1895년), 병신년(1986년)에는 각각 “방어장”과 “왜놈 앞장이들아”들의 글을 통해 의병활종을 촉구. 1910년 일제 강점 후 만주로 이주 독립운동을 지속함. 가볍게만 보아오거나 혹은 크게 인식조치 하지 않았던 19세기말, 20세기의 여성들의 의병활동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게 해 준 고마운 조선의 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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