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319 Los Angeles Marathon
2006년 3월 19일 21회 LA 마라톤 대회 참가 후기
오늘은 2007년 1월 7일 일요일이다. 2006년 3월 19일에 있었던 LA마라톤 후기를 이제야 쓴다는 것은 정말 우스운 일이다. 순전히 차일피일 미루는 못난 습관때문이다. 다음 마라톤이 채 두 달이 남지 않았는데 차라리 2007년 마라톤 후기를 쓰면 되지 않냐고 자문도 한다. 하지만 내 생애 첫 마라톤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부끄럽지만 지금이라도 후기를 쓰고 싶다.
마라톤이라는 단어을 처음으로 내 피부로 느낀 것은 고등학교 1학년때였다. 올림픽 게임에서나 듣던 마라톤은 나와는 아주 동떨어진 개념이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버리는 약간은 괴짜스러운 운동이었을 뿐이다. (그 먼 거리를 왜 뛰는 것일까라는 의문에 난 도저히 답할 수 없었다. 그래서 별 신경쓰지 않는 이상한 운동 중에 하나였다.) 그런데 내가 제일 존경했던 선생님께서 마라톤을 했다고 하셨다. 작은 나보다도 훨씬 작은 체구에 군살 하나 없는, 아주 야무진 분이셨다. 그 분에게서 마라톤은 소수의 선택된(?) 사람만이 하는 운동이 아닌, 의지력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분으로 인해 마라톤은 내게 큰 도전이 되었다. 언젠가는 꼭 한번은 뛰고 말리라.
그 도전은 꽤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현실이 되었다. 살다 보니 그 때의 친근감은 또 사라졌다. 마라톤은 고사하고, 5km, 10km도 제대로 뛰지 않는, 아니 그 이전에 달리기, 혹은 운동이라고는 좀처럼 하지 않고 십몇년을 더 살았다. 쇼핑다니느라 한나절 내내 걷고는 그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남편이 달리기를 한다고 나갈 때면 달리기따위를 왜 하냐는 몰상식한 질문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다가 운동이 필요해서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래도 한 20여분 잠깐 달리고 말았다. 그러다가 남편과 같이 달리기를 하고 5km, 10km 대회에도 나가게 되었다. 그제서야 선생님이 해내셨다는 마라톤이 생각났다. 뛰고 싶었다.
하지만 2005년 오렌지 카운티 라구나 힐즈(Laguna Hills)에서 Saddleback 하프를 할 때도 마라톤은 겁이 났다. 그 하프가 유달리 언덕이 많아 힘들었기 때문에 더 의기소침해진 것 같다. 하프의 기록이 처음 도전 치고 나쁜 것은 아니었다. 그 도시 이름조차도 달리기 중 넘었던 힘겨운 언덕을 제대로 말해주지 못 한다. 그래도 많은 언덕길을 달려 1시간 56분에 첫 하프를 해 냈으니 이론적으로는 나름 자신감도 생길만 한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마라톤은 영 안되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고 잠잠해졌다. 5km, 10km달리기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때가 아니면 안 되겠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2006년 LA마라톤을 뛰겠다고 결심했다. 목표는 기록이 아니라, 걷지 않고 완주하는 것.
2005년 12월 훈련은 아주 엉망이었다. 뉴욕에도 다녀오고, 연말이라 여러가지로 어수선해 주말 일정이 늘 망가지는 것이었다. 본격적인 훈련은 1월부터 했다. 다행이 월초에 하는 다른 해와 달리 2006년 마라톤일은 3월 19일이었다. 시간이 조금 더 생긴 것이다.
본격적인 훈련이라고 해도 절대 무리해서뛰지는 않았다. 장거리도 세 시간을 한번 뛰어 본 것이 전부이다.
이런 훈련이었으니 마라톤이 열리는 당일이 되자 조금 겁이 났다. 이렇게 엉성하게 준비하고 과연 완주할 수 있을까. 다치지 않고 뛰어낼 수 있을까.
아침은 그 전날 가주마켓에서 사 둔 절편을 먹었다. 무리해서 먹지 않고 들어가는 만큼만 먹었다. 교통 대란이 예상되어 차는 그대로 두고 노망디에서 전철을 타고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전철이 바로 근처에 있는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 혹시나 엠먀뉴엘을 만날까 싶어 그가 친구들을 만났다는 호텔 로비로 가 보았다. 그를 찾을 수 없었다. 그래도 사람들로 북적대는 다운타운에서 그 로비는 대기하기에 좋은 장소였다. 그래서 그냥 그 로비 바닥에 눌러 앉았다. 옆에서 응원해주는 남편과 농담도 하고 몸도 풀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제 곧 출발 시간이다. 남편과 인사를 하고 출발선으로 나선다. 엘리트 선수들과 서브 주자들이 먼저 서고 나와 같은 느린 주자들은 제일 마지막이다. 출발선을 밟기까지 10분이 더 걸릴거라는 사람들의 말을 듣는다. 친구나 그룹으로 온 사람들이 많았다. 모두 들떠서 마라톤 애기를 한창 벌이고 있다. 조금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곧 나 자신을 달랜다. 어차피 나와 하는 게임이다. 가장 외롭고 힘든 싸움인 거라고 마음을 다스린다.
미국 국가도 불렀던 것 같다. 10개월이 다 되어가니 정확하게 기억나는 것이 거의 없다. 하여간 출발을 알리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무슨 음악이나 연주로 꽤 요란했던 것 같다.
그리고 드디어 출발이다. 내 인생의 첫 번째 마라톤. 달린다는 느낌보다는 빠르게 걷는다는 느낌으로 사람들과 같이 움직인다. 그러다가 조금씩 발걸음이 빨라진다. 사람들이 빠져나가나보다. 추위를 달래기 위해 걸쳤던 옷을 버리고 달려나간다. 양 옆의 거리는 응원하는 사람들로 발디딜 틈조차 없어 보인다. 저 어디에 남편이 나를 응원하고 있겠지.
다운타운을 빠져가는 것은 재미있었다. 들떠 있는 주자들, 각가지 재미있는 방법을 고안해 응원을 하고 있는 사람들, 정말 흥겨운 출발이었다. 창이 아주 넓은 멕시코 모자를 쓰고 커다란 멕시코 깃발을 들고 사람들을 응원한 한 아저씨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조금 지나니 한번도 가지 않는 LA의 각 동네들이 나온다. 흑인들이나 라티노들이 많이 산다고 해서 치안이 좋지 않다고 알려진 동네들, 하지만 우리가 지나가는 부분은 아주 깨끗했고 응원나온 사람들도 정말 친철했다.
그 때 달렸던 피규로라 길(Figueroa St), 마틴 루터 길(Martin Luther Blvd), 엑스퍼지션 길(Exposition Blvd.), 모두 자주 가는 길이 아니다. 그렇게 내 발로 뛰면서 밟아보니 참 좋았다.
5km가 지나서는 물이나 게토레이가 서비스될 때마다 꾸준히 마셔두었다. 베니스 거리였던 것 같은데 한 라티노 아주머니가 딸아이과 같이 바나나를 앙증맞게 썰어놓고 지나는 주자를 격려해주었다. 평소 훈련 때도 바나나 위주로 먹었던 지라 고맙게 바나나를 받았다. 그 때 그 예쁜 꼬마 아이의 미소가 너무 만족스러보였다. 정말 고마웠다.
하프에 가기까지는 이렇게 긴장을 푼 채로 천천히 달렸다. 다행히 별로 아픈 곳도 없이 양호한 컨디션으로 하프를 지나갈 수 있었다. 다만 바나나와 선글래스를 받기 위해 약속했던 하프 지점에서 남편을 만날 수 없었다. 입고 있던 셔츠도 주고 선글래스도 받고 싶었는데 아마 남편이 늦나 보다. 아마 베니스 주위에 차가 많이 막혔나보다. 무엇보다 바나나를 받지 못 해 아쉬웠다. 바나나는 주최측에서 주는 것이 아니라 응원하는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준비하는 것이라 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최측에서는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젤을 건네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바나나를 못내 기다리고 있었는데 할 수 없었다.
대신 베니스에서 우회전을 해 라시네에나가로 올라가는 지점에서 크리스를 만났다. 크리스가 나올 줄은 정말 기대하지 않았다. 미안했지만 그에게 땀에 젖은 셔츠를 부탁하고 계속 달려갔다.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자기가 생각한 것보다 내가 일찍 와서 깜짝 놀랐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일찍은 아니었다. 하프를 지나고나서야 내가 정말 천천히 뛰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완주하는 것도 좋았지만 다섯 시간까지 걸리는 것는 또 싫었다.
조금씩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마침 경사도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피코를 지나고 샌 빈센테등, 정확히 어디가 언덕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15마일 지나서는 한참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도 다리에 쥐가 난다거나 걸어야한다거나 하는 정도는 아니었다. 힘든 언덕이었지만 계속 달리면서 뛰어갈 수 있었다.
다행히 6가에 들어서면서 언덕은 많이 완화되었다. 로스모어와 3가 어딘가에서, 20마일과 22마일 사이에서, 영화 클럽 씨네라 회원들을 만났다. 너무 고맙게도 응원을 나와주었던 것이다. 정말 고마웠다. 난 그들이 너무 반가워서 멀찌감치서부터 손을 흔들어댔다. 잠깐 제자리 달리기를 하면서 인사를 하고 핸드폰을 빌려 남편과 통화를 했다. 차가 많아 막힌다고 한다. 씨네라 회원에게 인사를 하고 다시 뛰기 시작한다. 20마일이 넘은 지점이어서 막막하지는 않았다. 이제 몇 마일만 가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대회측에서 오렌지도 많이 주었는데 난 계속 바나나 생각이 났다. 조금 달리다보니 한 여자가 바나나를 손에 들고 있다. 그걸 받을려고 손을 뻗치니 그 사람이 날 의아하게 쳐다본다. 아, 아무 주자가 주는 것이 아니고 자기들이 기다리는 사람을 위한 것이구나. 그래도 손을 뻗치고 간곡하게 달라는 눈짓을 보내는데 웬만하면 줄 것을… 그 사람들이 조금 야속했지만 나무랄 것도 없었다. 바나나가 모자랐나보다.
다행히 윌튼 길에 응원나온 한 한인 그룹에서 바나나를 건네준다. 너무 고마웠다. 너무 고마워 당장 회원으로 가입하고 싶은 마음이 꿀떡같았다.
올림픽 길에 들어서서는 아주 힘들어졌다. 이제 2마일정도 남았다. 그 넓은 올림픽길을 다 막아놓았는데 초반과는 달리 그 길을 메꿀 만큼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그나마의 사람들도 모두 지쳐있는 표정이다. 걷는 사람들도 꽤 된다. 아주 경사진 언덕은 아니었지만 은근히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언덕길이었다. 24마일 이상을 달렸으니 평지도 언덕같은데 왜 여기에 이런 복병을 두는 것인지. 괜히 마라톤 코스를 정한 사람을 원망해본다.
한인들과 라티노 몇몇이서 태극기를 나누어준다. 골인에 가까워서야 그 태극기를 받지 않은 것이 후회되었다. 2007년 마라톤에서도 그렇게 나누어준다면 꼭 받아서 손에 쥐고 들어가겠다고 결심해본다.
드디어 플라워 거리에서 마지막 좌회전을 한다. 여기서부터는 알 수 없는 힘이 생기는 듯 했다. 틀림없이 큰 소리로 응원해주는 사람들 덕분이리라. 그들에게 너무 고마웠다.
이제 와서 경쟁한다는 것이 조금 우습지만 내 바로 앞의 주자를 앞지르기로 마음을 먹는다. 정말 젖 먹던 힘까지 다 쓴다는 말을 처음으로 느껴본다.. 악을 쓰며 그 사람을 앞질렀다. 10미터, 5미터, 그리고 마지막 한 발, 들어오는 주자의 이름을 불러주는 아저씨가 내이름은 쑥 빼버린다. 뭐, 원망할 것도 없다. 중요한 것은 난 해 냈다는 것이었다. 내가 원했던 것처럼 걷지 않고 달려 냈다. 중간에 화장실 한 번, 남편에게 전화 한 통 보내는 사이만 잠깐 멈추었을 뿐이다. 4시간 19분. 썩 좋은 기록은 아니지만 그래도 무척 기뻤다.
달리기 전까지만 해도 해낼수 있을까라고 마구 의심했었는데…
난 갑자기 모든 것이 고마워졌다. 그리고 살아서 이렇게 뛸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했다.
첫 마라톤이어서 그런가. 마음이 이렇게 격정에 가득 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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