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aving Korea in 2008

In the rain

2008년 9월 21일 일요일

구미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인천공항으로 가는 리무진 버스에 올라탄다.
버스안에서 바라본 세상은 흐릿하다.
엄마와 아버지의 모습이 가을을 재촉하는 부슬비에 가려진다.

비가 원망스럽지는 않다. 빗방울 하나하나 떨어지는 것이 더 살가워, 그래서 더 가슴 뭉클해질 뿐이다.

이번만큼 한국을 떠나기가 힘든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한국에서는 무엇이든 더 가깝게 느껴져서이다.
비 듣는 소리까지 더 반갑다. 살아있는 빗방울만 같아서이다.
그런 빗방울을 멍하니 바라보는 거, 그리고 그 속에서 사라지는 나이드신 부모님을 바라보는 거,
그래서 더 가슴 아프고, 더 인간적이고
더 잊을 수가 없다.

1년에 한 번 꼴로 예닐곱번 한국을 다녀왔지만 이렇게 시차 적응이 안 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새벽 네다섯시까지 잠들지 못 해 어리벙벙 눈 떠 있기가 벌써 일주일째다. 꿈만 같다.

한국에서 진득이 느끼고 온 삶의 감상을 잊지 말라는 뜻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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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KDO GUARDS

Dokdo Guards (Dok Island Guards)

(출처: 뉴욕 라디오 코리아nyradiokorea.com/)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아트디렉터 이제석(27) 씨가 도안한 독도 수호 티셔츠다.

티셔츠 뒷면: 4천700만의 독도경비대(47,000,000 DOK ISLAND GUARDS)

우리 함께 독도를 지킵시다(TOGETHER WE CAN PROTECT DOKDO)

티셔츠에 담긴 그의 주제는 섬 도둑질 그만(STOP ISLAND THEFT)!

Dokdo Korean

I Love Dokdo

이 셔츠는 동생에게 부탁해서 한국에서 공수받은 독도 티셔츠이다. 위의 셔츠만큼 강한 인상은 아니지만, 알림이 역할을 하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것 같다. 내일 70여명의 회사 직원이 모이는 분기 발표 회의가 있는데 이 셔츠를 입어야겠다. 미국 이외의 일에는 워낙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 태반이기는 하지만, 그리고 아직 내가 한국 출신인지를 모르는 사람들도 꽤 있을테지만, 조금이라도 설명의 실마리를 만들어보자. 일본 정부의 간교한 술수를 조금이라도 알려야한다.

바라보고만 있어서는 얻어지지는 않는다. 국력은 힘을 다지는 동시에, 그 힘을 긍적적인 모습으로 보여주기도 해야 비로소 탄탄해지는 것이다.


  Posted under Everyday Life on Thursday, August 14th, 2008 | No Comments »

China Map

백두산 여행을 준비중이다. 어쩌면 여행을 포기해야하는 상황일 수도 있지만, 그냥 접어버린다면 뚱한 마음으로 실컷 속앓이만 할 것 같다.

백두산 지도


  Posted under China on Monday, June 23rd, 2008 | 1 Comment »

Sicko - Which Finger Do You Want?

sicko

잘려나간 두 손가락 중 어떤 것을 붙일라우?


영화 식코(Sicko)는 특별하게 마음에 들었다. 미국 사회의 부조리를 예리하게 읽어내는 마이클 무어(Michael Moore)의 시각에 원천적으로 동의하는 바가 많았기에 벌써 많은 점수를 따고 들어간 영화이기도 했지만, 건강 보험은 내가 미국에 와서 가장 부당하게 느낀 것 중에 하나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물론, 나의 반발은 보험과 병원에 관련한 불편함이나 재정적 부담에서 나온 소비자 입장의 일차원적인 반발이다.


그 불편함과 재정적 부담이란 구체적으로,


* 한 달에 일인당 10만원에서 20만원이 넘는 보험을 들어야한다는 것,
* 그런 보험료를 내고도 년기본지불비(out-of-pocket expenses)에 이를 때까지는 진료비나 약값을 내야한다는 것,
* 그러고도 병원을 찾을 때는 이 의사가 내 보험 회사에 등록이 되었는지 알아보아야하고,
* 미리 예약을 해야하고,
* 혹은 주치의에게서 전문 진료 의사를 추천받아야한다는 것.
* 그리고 치과 보험, 안과 보험을 수십 달러씩을 지불하면서 따로 들어야한다는 것.


영화 시코는 미국 건강 보험에 대한 나의 이러한 소시민적인 불만에 대한 설명을 넘어 그 뒤에 가려진 거대하고 치졸한 자본의 논리, 그 폐해를 아주 이해하기 쉽게 풀어준 다큐멘터리이다.


그 폐해의 일반적인 사례란:


* 매달 충성적으로 상당한 금액의 보험료를 내고도 병에 걸리게 되면 제대로 혜택을 받을 수 없음.
* 보험 회사에서 온갖 얄팍한 방법과 수단을 동원하여 발뺌을 하기 때문에 보험 혜택을 못 받고 스스로 진료비, 약값을 지불해야하는 경우가 허다함.
* 사소한 질병이 아니라 암과 같은 심각한 병이라면 이 때문에 쉬이 가산을 탕진할 수 있음.


제대로 기가 차는 사례:


* 기계 작업을 하다 약지와 중지 손가락이 잘려나갔다. 약지를 붙이는 것은 천이백만원, 중지를 붙이는 것은 육천만원, 한 달에 20만원의 보험료가 없어 보험을 들지 않았던 환자가 그런 거금이 있을리 만무. 기타를 즐겨치는 듯 한 이 환자는 결국 약지를 선택했다. (적어도 약지에는 결혼 반지라도 낄 수 있으니…, 영화에 나오는 사례임)

sicko which finger
Sicko Which Finger


난 은연중에 이 영화를 사람들에게 퍼뜨리고 있다. 직장 동료들에게 이번 주말에 보아야할 영화로 추천을 하거나, 혹이 이 영화 보셨수라고 휴식 시간 잡담 메뉴로 자주 써 먹는다. 스스로 이런 위험 부담을 안고 살아가는 미국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알고 있어야할, 그리고 뭔가 행동을 취해야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이 영화를 미국의 건강 보험과는 크게 상관이 없는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오늘 출근 길에 한국의 건강 보험등, 공공 사업 분야에 대한 민영화를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는 한나라당의 발표가 있어 그나마 한숨을 돌릴 수는 있지만, 우린 여전히 세계 거대 기업들의 “합법적인” 인권 유린에 대해 다같이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극소수의 부자들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희생자로 남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 영화는 거듭 일깨워주고 있다.


부연 거리 하나: 린다 피노(Linda Pino) 의사의 증언 (1996년 5월 30일 미국 하원 의원에서)


“1987년 봄, 저는, 내과의사로서, 한 환자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수술을 거부했습니다. 저의 거부로 그 환자는 사망했습니다. 저는 그 일로 어떤 책임도 추궁당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제가 한 일로 회사는 5억의 비용을 절약할 수 있었고 회사에서의 저의 탄탄대로에 일조를 했습니다….저의 주된 업무는 제 의학 전문 지식을 회사 재정에 보탬이 되도록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부연할 거리 둘: 영화 자체도 훌륭하지만, 특별판에 추가된 여러 사람들과의 인터뷰 내용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대부분이 의미있고, 새겨들어야할 것들이고 기억에 남았지만, 단 한 가지만 추려서 적고 싶다. 전 영국 국회의원 토니벤(Tony Benn)의 인터뷰 중 한 내용을 옮긴 것이다.


“어느 날 기차을 타고 어디로 가는 있는데 승무원이 와서 ‘고객님들, 표 검사합니다.’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나는 고객(customer)이 아니라 승객(passenger)이다.’ 승무원이 표를 보더니 ‘아뇨, 당신은 승객이 아니라 고객입니다.’라고 했다.


건강 보험에 대해서도 나는 같은 질문을 던져본다. 나는 ‘고객‘인가, ‘환자‘인가? 물론 병원 매뉴얼에는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없다.


하지만 고객이라는 말은 생각해보자. 이 말에는 당신이 돈이 없다면 당신은 고객이 될 수 없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니까 ‘고객‘이라는 말은 돈이 없는 사람을 비인격화하는 것이다. …”


그의 말이 옳다. 병원에 가는 사람은 고객이 아니라 환자여야한다. 아파서 병원에 가는 사람을 고객이라고 한다면 돈이 없는 사람은 고객이 될 수 없고 그들은 치료를 받지 못 한다.


돈이 있으면 병원의 고객이 되고, 돈이 없으면 병원의 고객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아픈 사람은 환자이지, 기업이 그걸 빌미로 돈을 벌 수 있는 고객이 되어서는 안된다.


영화 식코를 밀어줄 몇 개의 숫자들:


일년 중 보험없이 사는 기간이 있는 미국인: 5천 4백만여명
보험이 없어 올해 사망할 것으로 예상되는 미국인: 만 8천명
세계건강기구에서 보는 미국의 건강 시스템은 37위
건강 보험 관련 로비스트는 미국 하원 의원의 네 배
휴마나(Humana) 회사 사장 마이클 맥앨리스터(Michael B McAllister)의 2006년 연봉은 33억 (휴마나는 위의 린다 피노 의사가 일한 회사)


출처: http://www.michaelmoore.com/sicko/checkup/


* out-of-pocket expenses (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비용: 예를 들어 일년 out-of-pocket 금액이 2000달러라면 보험이 커버되더라도 내가 쓰는 비용이 이 금액에 이를 때까지는 진료비며 약값등의 의료비를 내가 내야한다는 거. 일년에 감기 한 두번 걸리거나 가벼운 알러지가 있는 사람들은 한 달 보험료 20만원을 내고도 진료비, 약값을 스스로가 내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이 아웃오브포켓 제약이 없는 보험을 살 수도 있다. 그럴려면 미국식 표현으로 팔과 다리쯤은 팔아야할 게다 (it costs an arm and a leg).


  Posted under Movies on Thursday, June 19th, 2008 | No Comments »

20070304 Los Angeles Marathon

2007년 3월 4일 22회 LA 마라톤 대회 참가 후기 LA Marathon 22

LA Marathon 2007년 3월 4일 로스앤젤러스 22회 마라톤

2007년 3월 4일 로스앤젤러스 22회 마라톤 (LA Marathon)
(Los Angeles Marathon)

잠을 한숨도 못 잤다.  :-(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침대로 올라 수십번 잠을 청한 것 같은데 매번 실패했다.  나의 뇌는 무슨 각성제라도 먹은 것 마냥 아주 말똥말똥했다.  아니, 일부는 아주 뚜렷하게 깨어있고 나머지는 멍한 상태로 깨어있었다고 해야할 것 같다.

밤새 잠을 못 잤으니 ‘몇 시에 졸린 눈을 비비고 깨어났다’라는 말도 할 수 없다.  그래도 거실의 창가리개를 걷으며 마라톤 날을 맞이하는 혼자만의 행사를 의미있게 진행한다.  ‘잘 뛰어보아야지.’

다음은 아침을 먹을 시간이다.  처음 두 세 시간을 지탱해줄 탄수화물 공급 시간,  피로가 쌓여서인지 입맛도 없다.

어제 마켓에서 사 놓은 약밥을 입에 넣었다.  아, 약밥이 독밥같았다.  이상야릇한 맛과 깔끔하지 않은 단 맛이 지들만의 궁합을 맞추어 정말 형편없는 맛을 만들어낸다.  차라리 작년처럼 절편을 먹고 말 것을…

6시에 남편을 깨운다.  등번호, 옷, 모자, 시계 등 여러가지 용품을 다시 한 번 챙긴다.  선블락 크림을 바르고 6시 30분이 조금 넘은 시간에 집을 나섰다.

유니버셜 시티(Universal City)역은 사람들로 북적일까봐 한 정거장 덜 간 노스 할리우드(North Hollywood)역에 차를 주차시킨다.  마라톤 주자는 오늘 매트로 전철 요금이 무료다.  :-)

전철에는, 엑스포에서 나누어준 비닐 비옷을 입고 새벽의 한기를 달래는 마라토너들이 많이 보였다.

유니버셜 시티역의 마라톤 출발 지점은 짐작대로 인산인해였다.  혹시라도 몰아닥칠 졸음이 걱정되어 멀건 커피를 한 잔 마시고 나왔더니 역시나 화장실이 가고 싶다.

다른 것은 확인할 겨를도 없이 바로 간이화장실에 끝없이 늘어진 줄의 꼬리를 찾아간다.  30분을 기다렸다.  달리는 사람이 2만 5천명이니 이 정도면 양호한 것인가.

볼 일을 보고 나니 얼추 출발 시간이다.  남편이 출발 지점 가까이까지 같이 걸어가주었다.  사진도 찍고 남편과 정다운 인사도 나누었다.

8시 15분 출발로 되어있는데, 작년과 달리 그 즈음에서 총소리나 미국 국가가 들리지 않았다.  다시 10여분 이상을 기다리니 사람들이 고함을 지르고 조금씩 걸어나가기 시작한다.  사람들의 함성에, 이제 마라톤을 뛰는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출발점을 밟은 것은 8시 36분이었다.   인터넷으로 확인한 경사도와는 달리 처음 2마일 언덕길은 그렇게 가파르지 않았다.  물론, 초반이었으니 그렇게 느꼈으리라.  조금 걱정을 했지만 무난하게 2마일까지 오르막길을 달렸다.

2마일 근처에서 내리막길이 시작되었다.  몇몇 사람들이 다시 좋아라 고함을 지른다.  이제 겨우 얼마 뛰었다고 내리막길이 이리 반가운지…  사람들에 치여 속도는 낼 수 없었다.  오히려 넘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 애를 쓰며 달려야 했다.

안내지도와는 달리 3마일이 되어서야 급수대가 나온 것 같다.  어제와 오늘 아침 제대로 물을 마시지 못 해 첫 번째 급수대가 그저 고마웠다.

처음 3마일 정도는 고속도로와 산길을 달려서인지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나무를 보는 것도 좋지만 다채로운 멋은 작년보다 덜 했다.  조금 답답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왜 코스를 바꾼 것일까.  답없는 질문에 머리를 굴려본다.

4마일에서 물과 게토레이를 열심히 마시고 카홍가(N. Cahuenga) 거리를 달려 한인타운 근처로 내려온다.  작년에는 20마일 근처에서 달렸던 항콕 팍 근처가 지금은 6마일 지점이다.  여기까지는 그런 대로 괜찮았다.  작년같은 발랄함은 기대할 수 없었지만, 그렇게 많이 힘들지는 않았다.

로스모어길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돌려 한인타운을 지나간다.  5년 반을 살며 늘 다니던 6가 길을 두 발로 달려본다.  응원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반갑고 정겨웠다.  하지만, 무조건 완주를 해야한다는 생각에 주변에 많은 시선을 주지는 못 했다.

한인타운의 대표 거리 올림픽 거리를 달리니, 한복을 차려입은 응원객들이 열심히 성원을 해 준다.

9마일이 조금 지난 후 후버길로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는데 여기서부터 많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어느 거리를 달리는 지도 궁금하지 않았다.  당연했다.  벌써부터 무릎 관절이 아파왔던 것이다.  작년 마라톤에서는 아마 23마일 근처에서 느꼈던 통증같다.  근데 겨우 10마일 정도 달린 것 같은데…

제대로 훈련을 못 한 점과 마지막 훈련을 너무 대책없이 했다는 점등, 어리숙게 이 마라톤을 준비한 것 같아 갑자기 상심이 되었다.  작년, 첫 마라톤 목표가 완주였는데, 다시 그 시점으로 돌아온 것이다.  올해는 기록을 깨는 것이 정석이건만, 작년처럼 다시 완주가 목표가 되어 버렸다.  사람들은 열심히 응원해 주었지만 갑자기 기분이 우울해졌다.

이러면 안 될 것 같았다.  마음을 고쳐먹기로 한다.  우선은 지금 최선을 다하고 보자고 나를 달래야했다.  26.2마일이 목표가 아닌, 먼저 13.1마일이 목표라고 생각하자.  그러면 조금만 더 가면 된다.

그렇게 생각을 하니 달리기가 조금 쉬워졌다.  드디어 중간 지점이다.  꼭 2시간 10분이 걸렸다.  딱 1마일에 10분 페이스이다.  딱 작년 속도이다.

중간을 지나서는 계속 1마일 단위로 목표를 잡았다.  도저히 13마일을 목표로 잡을 수는 없었다.   또 급수대에서 물을 마실 때마다 10초에서 20초정도 걸어주었다.   약해지는 내 모습이 정말 싫었지만 물을 마시느라 걷다보니 다시 뛰기 시작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중간에 캘리포니아 대학을 지난  것을 빼고는 17마일까지는 어디인지도 모르고 달리기만 했다.  중간 중간 재미있는 공연도 있었는데, 시끌법적한 소리에 잠깐 고개만 돌렸을 뿐이다.  제대로 기억에 남길 여력이 없었다.

중간 지점쯤에서 한 응원객에서 받아둔 스니커즈 초콜렛 바가 생각이 났다.  스니커즈가 갑자기 숨겨둔 에너지를 주는 듯 했다.  약간 기운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스니커즈의 이런 도움에도 불구하고, 17마일을 지나서 18마일까지는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여기서부터 1마일에 10분 페이스로 달리는 것이 힘들어져갔다.   그것보다 약간 빠른 페이스로 계산해서 남편이 19마일 지점에서 기다리기로 했는데 18마일을 가기도 전에 그 시간이 지나버렸다.

18마일 지점에서 스프린트 서비스를 이용해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늦을 거라고 알려주었다.   남편과 만날 지점을 다시 확인하고 19마일까지 열심히 달렸다.

물과 게토레이를 마신 후에는 이제 스트레칭도 해 주었다.  작년에는 스트레칭 한 번 없이 다 뛸 수 있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어 또 의기소침해지려는 듯 했다.

기둥에 기대 같이 스트레칭을 하는 다른 주자들을 보고 다시 정신을 가다듬기로 한다.

19마일 조금 못 가서 남편을 만났다.  내 이름을 적은 종이를 들고 나를 응원하고 있었다.  너무 반가웠고 너무 고마웠다.  남편에게 허리에 묶어맨 작은 주머니를 건네주고 바나나를 챙겨 받는다.  이제 이 바나나와 따로 꺼내둔 건포도가 전부다.

이제 점점 더 힘들어져 갔다.  마라톤이 이렇게 힘들구나는 처절하게 느꼈다.  무릎이 너무 아파 급수대마다 1분여 스트레칭을 해 주었는데도 나아지지를 않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원봉사대가 들고 있는 바세린을 흠뻑 무릎에 발라본다.  신기하게도 잠깐 고통이 싹 가신다.  바세린에 이런 효과가 있었다니…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애용하는 구나…

끌다시피하며 1마일 1마일을 달려간다. 15마일부터 계속된 오르막길은 당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급수대에서 걷는 시간이 갈수록 길어간다.  자원봉사대 청소년들과 응원객들이 내 등번호를 보고 힘차게 이름도 불러주는데, 정작 나는 웃어줄 힘도 없다.

22마일을 지나고 조금 달려가니 정말 보고 싶지도 않는 오르막길 다리가 나온다.  처음 2마일까지의 경사도보다 더 급한 언덕이었다.  그 다리를 보는 순간 옆에서 달리는 한 아저씨가, ‘저긴 달려서 안 갈 거야’라고 한숨 섞인 말을 내뱉는다.  ’제 말이요…’라고 맞장구를 치고, 조금 더 달린 후 나도 드디어 걷는다.  아, 이렇게 해서 뛰어서 완주는 못 하는구나.

중간을 지날 때는 그래도 1마일에 10분 페이스로만이라도 하자꾸나라는 야무진 희망이 있었는데,   어느덧 내 소망은 4시간 30분으로 되어 있었다.

걷는 걸음도 빠르지 않아 다리 언덕을 지날 때 많은 사람들이 나를 추월해갔다.

이렇게 걷다가는 나를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아 다리가 끝나기전 다시 뛰기 시작했다.   아무리 뛰어도 다음 마일 알림 현수막이 보이지 않는다.  응원하는 사람들도 없고, 달리는 동네도 외딴 곳 같다.   여기는 전혀 와 볼 것 같지 않은 지역이었다.

24마일에서 25마일사이에서 또 한참을 걸었다.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는 마라톤이다.

그래도 마지막 1.5마일 정도는 계속 뛰었다.  조금이라도 속도를 더 내기 위해 입을 악 물고 뛰었다.  이제 시간은 포기했다.  뛰어서 끝내자라는 생각밖에는 없었다.

남편이 종료 지점 200미터 못 미치는 곳에서 나를 보았다는데 아무리 이름을 불러도 나는 지리하게 달리기만 했다고 한다.  남편도 인정했다.  내가 참 비참하게 달리는 것 같았다고…

마지막 0.2마일마저 힘들었다.   하지만 할 수 없었다.  마지막인 것이다.

피니쉬 라인의 칩 기록판을 밟는 순간은 그 어느 때보다도 황홀했다.   드디어 끝이다.

완주 시간 4시간 43분.

참 부끄러운 기록이지만, 그래도 완주했다는 마음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두 번째 마라톤, 배운 것도 많고 느낀 것도 많은 마라톤이었다.  많이 실망도 했지만, 그래도 뛰어서 좋았던 마라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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